내부적인 원인과 외부적인 원인이 함께 작용한 경우
몸싸움 후 발생한 급성 심근경색증
4년 전 협심증을 진단받은 46세 남자가 술에 취한 사람과 시비가 붙어 주먹과 발로 폭행을 당하는 등 몸싸움을 벌이고 나서 쓰러졌다. 응급실로 이송되어 심폐소생술을 받은 뒤 심박동과 호흡은 회복되었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얼굴에 생채기와 멍이 몇 군데 남은 것 외에 별다른 손상은 확인되지 않았다. 심장동맥의 협착이 발견되어 니트로글리세린을 투여하였지만, 심실세동이 반복되었다. 이후 저산소뇌병증에 의한 간질지속증과 흡인폐렴 등이 동반되었으며, 결국 입원 13일 만에 사망하였다.

치명적인 손상은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망의 원인을 위와 같이 적고 이를 근거로 사망의 종류를 ‘병사’로 적는 의사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심정지에 앞서 발생한 몸싸움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이 사례의 사망진단서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 사례처럼, 외력이 가해진 뒤에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질병이 악화되거나 새로운 증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이때 외력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사망의 종류는 다르게 분류될 수 있다. 외력이 질병의 악화와 발증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면 당연히 이를 선행원인으로 기록하고 사 망의 종류를 ‘외인사’로 분류하여야 한다. 외력의 역할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라면 위와 같이 이를 기록하지 않고 ‘병사’로 분류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러나 문제는 외력의 역할에 대한 판단이 의학적 지식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과관계를 판단할 때는 급성적인 요인을 만성적인 요인보다, 외부적인 요인을 내부적인 요인보다 중요하게 고려하는 규범적인 원칙이 있는데, 이러한 원칙을 적용하면 의학적으로는 중요하지 않은 외력을 사망의 원인으로 인정해야 할 수도 있다. 모든 의사들이 이러한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확신이 없다면 위 사례32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진료기록부에 기록하고 환자 측에 설명한 뒤 사망진단서는 ‘기타 및 불상’으로 발행하여 다른 전문가가 개입할 여지를 남겨 놓으면 된다.